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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삐북 — 책 페이지 사진에서 OCR로 문장 뽑아내기

2026-07-14·2분 읽기
삐삐북 — 책 페이지 사진에서 OCR로 문장 뽑아내기

좋은 문장 앞에서 손이 멈춘다

종이책을 읽다가 밑줄을 치고 싶은 문장을 만난다. 그 순간 선택지가 둘이다. 전부 옮기거나, 그냥 지나치거나. 타이핑은 정확하지만 흐름을 끊는다. 특히 소파에 누워 읽거나, 지하철에서 한 손만 자유로울 때는 더하다. “나중에 적지” 하면, 나중에 그 페이지를 다시 찾는 일부터가 일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사진을 찍는다. 사진은 빠르다. 그런데 사진만 쌓이면 앨범이 무저갱이 된다. 어느 책의 어느 문장인지, 검색창에 칠 단어가 없다. 시각적으로는 남았는데, 언어적으로는 사라진 기록이다. 몇 달 뒤 “그 문장이 뭐였지?”를 떠올리면, 스크롤만 하다가 포기한다.

나는 그 간극이 오래 불편했다. 읽기의 밀도는 문장에서 생기는데, 문장을 남기는 비용이 너무 높았다. 비용을 낮추지 않으면, 사람은 자연스럽게 안 남기는 쪽으로 학습한다. 학습된 포기는 게으름이 아니라 합리적인 적응이다. 그래서 필요한 건 더 강한 의지가 아니라, 더 짧은 경로다.

이미지는 남기고, 글자는 꺼내 둔다

페이지를 찍은 뒤, 그 이미지에서 글자를 읽어 텍스트로 저장할 수 있다면 경로가 짧아진다. 사진이라는 빠른 캡처와, 검색 가능한 문장이라는 나중의 쓸모가 같이 남는다. OCR이 완벽할 필요는 없다. 문장의 뼈대만 살아 있어도, 나중에 키워드로 찾을 수 있다. 틀린 글자는 고치면 되고, 필요 없는 문단은 지우면 된다.

실제 흐름은 단순하다. 책에 사진 메모를 추가하고, 페이지를 촬영하거나 앨범에서 고른다. OCR로 텍스트를 추출한 뒤, 필요한 부분만 남기고 저장한다. 형광펜으로 표시한 이미지와 추출한 문장을 같이 두면, “어느 페이지의 어느 느낌”과 “정확한 문장”이 한곳에 모인다. 타이핑 부담을 줄이는 게 목적이지, 완벽한 디지털 아카이브를 만드는 게 목적이 아니다.

도서관 책처럼 책에 직접 표시하기 어려울 때, OCR은 더 쓸모 있다. 표시는 사진 위에 하고, 문장은 텍스트로 빼 두면, 책은 깨끗하고 기록은 남는다. 중고로 팔 책, 빌려 온 책, 빌려 준 책에도 같은 논리가 적용된다. 종이의 물성과 디지털의 검색성을 동시에 취하려는 타협이다.

기억은 검색될 때 다시 산다

문장을 남기는 이유는 자랑이 아니다. 미래의 내가 다시 만나게 하려는 것이다. 다시 만나려면, 어딘가에 문자열로 존재해야 한다. 사진만으로는 감은 남아도 검색이 약하다. 텍스트만으로는 맥락의 온도가 약할 때가 있다. 둘을 같이 두면, 감과 검색이 서로를 보완한다.

삐삐북에서 사진 메모에 OCR을 붙인 이유도 그 보완이다. Apple Vision 기반으로 페이지 글자를 읽어 메모에 넣을 수 있게 했다. 앱이 아니어도, 사진 앱의 텍스트 인식으로 비슷한 일을 할 수 있다. 중요한 건 도구의 브랜드가 아니라, 좋은 문장 앞에서 포기하지 않는 경로를 갖고 있는가다.

오늘 밑줄 치고 싶은 문장을 만나면, 일단 찍고 글자만 꺼내 보자. 완벽한 인용 형식이 아니어도 된다. 문장이 검색창에 걸릴 수 있으면, 그 문장은 이미 당신 쪽으로 한 걸음 더 온 것이다. 읽기는 페이지에서 끝나고, 기억은 다시 찾을 수 있을 때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