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삐북 — 사진에 형광펜·밑줄로 표시하는 이미지 편집

표시는 생각의 손가락이다
책을 읽으며 형광펜을 긋는 행위는, 단순한 꾸미기가 아니다. “여기가 중요했다”는 몸의 표시다. 손가락이 멈춘 자리, 다시 읽고 싶은 줄, 나중에 인용하고 싶은 문장. 표시가 없으면 페이지는 균질한 글자 덩어리로 남고, 균질한 것은 기억에 잘 안 붙는다. 대비가 있어야 기억이 생긴다.
그런데 모든 책에 펜을 댈 수는 없다. 도서관 책, 빌린 책, 깨끗이 두고 싶은 책. 그런 책에서는 표시 욕구가 참아진다. 참다 보면, 중요한 문장도 “느낌만 남기고” 지나간다. 느낌은 증발한다. 증발한 자리에 남는 건 “좋은 책이었는데 뭐가 좋았지?”라는 흐릿한 후회다.
텍스트 메모만 남겨도 도움이 된다. 다만 텍스트만으로는 “어느 페이지의 어느 블록”인지 감이 약할 때가 있다. 문장은 같은데 앞뒤 맥락이 다르면, 나중에 읽을 때 온도가 달라진다. 종이책에서 형광펜이 하던 일—공간적 강조—을 디지털에서도 비슷하게 남기고 싶어진다.
사진 위에 그으면, 책은 깨끗하다
페이지를 찍고, 그 사진 위에 형광펜과 밑줄을 그리면 타협이 된다. 실물 책은 그대로 두고, 표시의 감각은 이미지에 남긴다. 짧은 메모를 옆에 적으면 “왜 표시했는지”도 같이 산다. 나중에 그 이미지를 열면, 텍스트 요약보다 먼저 “아, 이 부분”이 돌아온다. 시각 기억이 언어 기억보다 빠른 날이 있다.
할 수 있는 일은 단순하다. 문장 강조, 핵심 밑줄, 짧은 메모. 편집한 이미지가 그 책의 메모로 저장되면, 책 상세에서 표시들이 모인다. 다 읽고 나서 표시만 훑어도, 그 책이 내게 남긴 지도가 보인다. 지도가 있으면 서평을 쓸 때도, 친구에게 추천할 때도 재료가 있다.
OCR과 같이 쓰면 더 편하다. 시각 표시로 위치를 남기고, 텍스트로 검색을 남긴다. 둘 중 하나만 있어도 되고, 둘 다 있으면 나중의 내가 고마워한다. 완벽한 필기 시스템을 만들 필요는 없다. 표시가 있었던 날과 없었던 날의 차이만 경험하면, 습관은 자연스럽게 기울어진다. 기울어진 습관이, 결국 서재를 풍부하게 만든다.
깨끗함과 흔적 사이에서
책을 아끼는 마음과, 흔적을 남기고 싶은 마음은 자주 충돌한다. 어느 한쪽만 고르면 아쉽다. 사진 위 표시는 그 충돌을 우회하는 방법이다. 실물은 깨끗하게, 기록은 솔직하게. 솔직한 기록이 쌓이면, 독서 생활이 “소비”에서 “대화”에 가까워진다. 책과 나 사이에 밑줄이 오가기 때문이다.
삐삐북의 이미지 편집도 그 우회를 위해 넣었다. 페이지 사진 위에 형광펜·밑줄·짧은 메모를 남겨, 종이책 필기 느낌을 앱 안에 두었다. 비슷한 일은 기본 사진 앱의 마크업으로도 할 수 있다. 다만 표시가 그 책의 기록으로 묶여 있어야 나중에 찾기 쉽다. 앨범에만 흩어지면 다시 무저갱이다.
오늘 표시하고 싶은 문장이 있는데 펜을 대기 망설여진다면, 사진부터 찍고 그 위에 그어 보자. 책은 그대로여도, 당신의 읽기는 이미 표시된 읽기다. 표시된 읽기만이, 몇 달 뒤에도 “그때의 나”를 데려온다.